시사위크|국회=김지영 기자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이 도입한 라이더 배차 앱 ‘로드러너’에 대해 자영업자, 라이더, 직원들이 피해를 증언했다. ‘로드러너’란 배민의 모기업 딜리버리히어로(이하 DH)가 만든 라이더 배차 앱이다. 배민은 지난 4월부터 화성, 동탄 등에서 기존 라이더 앱 ‘배민커넥트’ 대신 로드러너를 도입한 데 이어, 다음달부터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시행할 예정이다.
◇ 라이더 절반 이상 “로드러너 도입되면 일 안해”… 입점업체 매출 피해도
26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배달의민족 모기업 딜리버리히어로의 로드러너 강제도입 피해증언 간담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는 사회민주당 한창민 국회의원, 조국혁신당 서왕진·신장식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국회의원이 주최했고, 한창민 의원이 좌장을 맡았다. 현장에는 자영업자 모임 ‘공정한 플랫폼을 위한 사장협회(이하 공플협)’,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 화섬식품노조 우아한 형제들의 조합원(이하 우아한유니온)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로드러너는 원하는 때에 앱에 접속하면 배달 업무를 할 수 있는 기존의 배민커넥트 앱과 달리, 라이더가 사전에 예약한 스케줄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또한 스케줄 노쇼, 수락률 등에 따라 ‘그룹’이 나눠진다. 높은 그룹에 속한 라이더는 스케줄 선택에 우선권을 갖고, 더 많은 미션(인센티브 업무)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런 정책에 대해 대부분의 배달노동자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라이더유니온이 배달노동자 166명(화성·오산지역 54명 포함)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60.7%가 ‘로드러너가 도입되면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답했다. 25.9%는 ‘일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근무시간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라이더유니온 구교현 지회장은 △스케줄 예약제로 인한 업무 강제 △불투명한 등급제 운영 △타사 대비 낮은 지도 품질(최근 업데이트를 통해 개선됨) △거리측정 및 정산 오류를 로드러너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로드러너의 스케줄 예약제에 대해 “라이더를 채용하지 않으면서 근로자로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또 그룹(등급)이 낮아지면 스케줄을 잡지 못해 배차 기회가 줄어들고 이는 수입 불안정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앞서 2021년 요기요가 로드러너를 사용하던 당시, 배달 중 화장실 이용이나 개인 사정으로 인한 이탈로 라이더가 등급이 하락한 사례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또 그는 로드러너의 정산 오류에 대해 9,000원으로 안내된 콜(주문)을 수행했는데 실제 정산액이 4,000원으로 줄어드는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객센터에 문의하면 차액을 받을 수 있으나, 문제는 계속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실태조사에서 라이더 54명 중 87.1%(47명)가 배민커넥트 대비 로드러너의 배달료 정산이 부정확하다고 응답했다. 로드러너로 배달료 정산 오류를 경험한 비율도 77.8%(42명)로 나타났다.
터키에서도 동일한 문제로 라이더들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터키의 배달 플랫폼이자 DH 자회사 yemeksepeti 라이더들은 2023년 12월부터 휴식권 보장, 라이더 등급 하락 시 계정 정지 중단, 배달 수수료 계산 오류와 보너스 미반영으로 인한 정산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수차례 집단 행동을 했다.
로드러너에 대한 라이더들의 불만은 타 배달 플랫폼이나 지역으로의 이탈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라이더유니온 김지수 사무국장은 17일 시사위크와의 전화에서 “시범 지역에서 활동하던 라이더들이 다른 배달 플랫폼으로 배민을 대체하거나 인근인 수원으로 활동 지역을 옮기기도 한다”고 밝혔다. 공플협 김준형 의장은 로드러너 시행이 시범지역 업체의 매출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플협이 시범지역 업체들로부터 제보받은 결과에 따르면 한 달 중 하루를 제외하고 거리제한 조치가 내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거리제한 조치가 걸리면 가게목록에서 업체가 ‘준비중’으로 나타나 주문을 받을 수 없다. 또 공플협은 지난해 4월 로드러너 적용 이후 시범지역의 업체 세 곳에서 월평균 매출이 각각 22.6%(83만9,789원), 19.2%(164만2,976원), 4.2%(14만4,107원)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 “로드러너 시행시 라이더 근로자 인정해야”
법무법인 위민의 이주한 변호사는 로드러너와 관련한 법적 쟁점을 설명했다. 그는 로드러너로 라이더들이 정기적인 스케줄 근무를 하게 되면 업무에 대한 통제성과 전속성이 증가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근로자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밝혔다.
라이더들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면 배민은 4대 보험 및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고, 라이더는 초과근로수당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유사한 사례로 타다 운전기사는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했으나, 실제로는 타다 운영사인 쏘카에 의해 근태 관리, 근무시간·장소 결정, 업무 지휘 감독을 받았고, 2024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
이어 라이더 그룹 변경과 관련된 알고리즘에 대한 고지를 배민이 명확히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배민은 “라이더 그룹제는 AI 알고리즘에 따른 것으로 등급 하락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혀왔다.
또 배달 운임 정산 과정에서의 오류는 형사적으로 사기죄에 해당한다며, 사기는 고의가 있었다는 게 입증돼야 하는데 상당 기간 반복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 설명했다. 다만 민사상으로는 채무 불이행이나 부당이득에 해당하나, 이 경우 당사자가 혐의를 부인해야 하는데 현재 배민 고객센터의 문의할 시 차액을 정산 해주고 있어 부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 내부 반대에도 강행… ‘본사 배불리기’ 의혹
로드러너를 강행하는 이유가 본사 배불리기를 위한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김원이 의원 등이 배민이 모기업 DH에 현금을 유출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배민은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의 84%인 5,372억 상당의 자사주를 매입 후 소각했고, 이는 100% 주주 지분율을 가진 DH에 귀속됐다. 또 지난해 12월 우아한형제들(배민 운영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645억원 가량이 거래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DH에 지급됐다.
배민 노동조합 ‘우아한유니온’은 공정한 입찰이나 성능 검증없이, 로드러너뿐만 아니라 내부 분석, 상담 툴 등 기존에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시스템까지 DH 툴로 교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교체가 완료되면 더 많은 비용이 DH로 유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인건비는 정체된 반면 외주 비용은 1.7배 확대돼, 내부 구성원들이 성과압박을 받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서비스업감시팀 임경환 과장은 “배민에서 로드러너를 쓰면서 수수료를 가져가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지만, 이 수수료가 시장 정상가와 비교했을 때 더 높다면 부당지원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등급제를 통해 라이더들의 근무 조건이 열악해지는 것이 배달앱 시장에서 지배력을 남용하는 행위에 해당되는지를 따져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배달플랫폼 문제와 관련해 TF를 결성해 입점 업주들이 겪는 문제 조사를 마쳤으며, 이 자리를 계기로 라이더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할 방안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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